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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에서.. 효에 대한 이야기

SELFSHIP 2010. 10. 27. 05:33

오늘은 두 명의 효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조선 정조 21년(1797년)에 왕명으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본하여 이병모(李秉模) 등이 간행하고 철종 10년 (1859년)에 교서감에서 중간한 책으로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륜(五倫)에 모범이 되는 150인의 행적을 적고 그 옆에 그림을 첨가한 책입니다.

활자본은 호암미술관과 서울대학교 등 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서울대학교의 규장각 온라인 사이트에 가 보시면 스캔을 잘 받아 논 PDF문서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진정한 인터넷 강국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물론 원본이기 때문에 한문을 해독 하셔야 하는데, 다행이 언해문이 첨부되어 있긴 하지만 17, 18 세기 한글이라 좀 해석이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오륜행실도는 책으로도 많이 간행되어 있으니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조금 두껍기는 하지만 제가 추천하는 책은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역주 오륜행실도"입니다.

오늘의 첫 번째 인물은 "자로부미(子路負米)"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효자 자로의 이야기 입니다. 자로(子路)는 공자의 제자로서 이름은 주유(仲由)라고 합니다.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子路負米 (列國 魯)

仲由字子路 孔子弟子 事親至孝 
家貧 食藜藿之食 爲親負米 於百里之外 
親歿之後 南遊於楚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乃歎曰 雖欲食黎藿之食 爲親負米 不可得也 
孔子聞之曰 由也可謂生事盡力 死親盡思者也

자로가 쌀을 지다

자로의 이름은 중유(仲由)이며 공자의 제자이다. 
부모 섬기기에 효도를 다했다. 집이 가난하여 명아주(
)와 콩잎()같은 나물 음식을 먹으며, 부모를 위해 백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왔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남쪽의 초나라에서 벼슬을 할 때 뒤따른 수레가 일백이고, 수많은 곡식을 쌓아 두고, 자리는 몇 겹으로 깔고 앉았으며, 음식을 짓는 솥이 줄을 지어 놓았다. 이에 중유가 탄식하여 말하길 "비록 나물 음식을 먹고 부모를 위해 쌀을 지기를 원하지만 가히 이루지 못하겠다."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시길, "중유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섬김에 힘을 다 하였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섬김에 사모(思慕)하길 다 했다 라고 할 수 있다" 라고 하시었다.


명아주()나 콩잎()은 가난하여 쌀을 구할 수 없는 농민들이 주로 먹던 나물로 자로는 부모님께 나물 음식만 해 드린 것이 죄송스러워 매일 백리 밖에서 쌀을 지어 나르는 일을 하고 그 삯으로 부모는 봉양 했다 하네요.

부모님이 돌아 가신 후, 초나라의 공직에 있을 때는 대단한 재산을 갖게 되었는데, 자로가 탄식하며 "오히려 나쁜 음식을 먹으면서 쌀을 지어 나르더라도 부모님이 계셨으면 하지만 그럴 수 없구나"라고 했답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자로가 이렇게 덧붙여 말 했답니다.

"양친의 수명은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부모님을 생각하는 자로의 마음이 정말 애달프기 그지 없습니다. 저는 서울대에서 간행한 "역주 오륜행실도"를 한문공부를 위해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학습이라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을 알게 해 준 이 책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조가 가히 왕명으로 간행할 만한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고어도곡(皐魚道哭)"입니다.


皐魚道哭 (列國 楚)

孔子出行 聞有哭聲甚悲 至則皐魚也 被褐擁劍 哭於路左 
孔子下車而問其故 對曰 吾小好學 周流天下而吾親死 

夫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往而不可反者年也 
逝而不可追者親也 吾於是辭矣 立哭而死 
於是孔子之門人 歸養親者 一十三人

고어가 길에서 울다 

공자께서 나가실 때에 심히 슬픈 울음소리를 들어 그곳에 가 보니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다. 베옷(상복)을 입고 칼을 안고 길가에서 울고 있어서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오셔서 그 연고를 물으시니, 대답하기를, "저는 어려서 학문을 좋아해 천하를 두루 다녔지만 저의 부모가 돌아가셨습니다. 무릇 나무는 고요히 있기를 원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효양(孝養)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으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세월이요, 돌아가셨음에도 쫓아 갈 수 없는 것이 부모이니, 내가 여기서 죽고자 합니다." 그리고 서서 울다가 죽었다.

이에 공자 제자가 부모에게 돌아가서 봉양을 하니 그 수가 열세 사람이었다. 스승이었던 공자를 뒤로하고 부모를 뵈러 갔다니, 아마 당시의 13명의 제자는 그 일을 겪고 크게 깨우친 바가 있었을 겁니다. 결국은 그 짧은 세월 동안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겠지요. 물론 당시 13제자의 부모님은 오히려 "내 걱정 말고 공부에만 전념하거라"라고 타일러 다시 그 자식을 공자에게 보내지 않았을까요?

언젠가 탤런트 박원숙씨가 아침 방송에 출연해서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생각이 나네요. 홀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것으로 잘 알려진 그녀에게 진행자가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입니까?’란 질문에 그녀는 ‘금은보화와 화려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실 때, 짜장면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효도이다.’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신체를 잘 간수하고 함부로 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입신하고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 효의 끝이라 했지만 그보다도 살아 계실 때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네요.

결국, 모든 행동의 근본은 "효()"에서 시작한다는 공자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매일 매일 안부를 묻고 좋지 않은 음식이라도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지극한 효행이라 생각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실 때마다 목이 메어서 축문을 잘 읽지 못하시던 저희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것 같습니다.

                                                                                                                                                                                                              출처